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이클 에시엔 (문단 편집) === [[첼시 FC]] === 2005/06 시즌에 [[올랭피크 리옹]]을 떠나 [[첼시 FC]]로 이적했다.[* 이 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에시엔을 [[로이 킨]]의 후계자로 여겨 그를 맨유로 데려오려했다. 그러나 이적료 문제로 인해 영입에 실패했고, 마침 챔스 8강에서 [[PSV 에인트호번]]과 리옹이 맞붙었는데, 그 때 퍼거슨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경기장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던 [[박지성|한 동양인 축구선수]]였다.] 에시엔이 첼시에 오면서 기존의 주전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있던 [[티아구 멘데스]]는 에시엔이 오자마자 [[올랭피크 리옹]]으로 떠났다. 당시 인지도에 비해 워낙 비싸게 영입한 에시엔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으나, 에시엔은 얼마 안 가 뛰어난 피지컬과 일대일 마크 능력을 보여주며 첼시의 주전 자리를 꿰찼다. 가공할 [[체력]]을 바탕으로한 무시무시한 활동량, 빼어난 수비력, 수준급의 슈팅으로 중원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중원 장악력 또한 대단해서 첼시의 피지컬 축구의 핵심이었다. 중미부터 센터백까지 소화 가능한 멀티플레이 능력을 갖춘 '''현역 최고의 꾸르소레'''로 세계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포진한 첼시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었다. 보통 허리를 책임지지만 수비수들이 줄부상으로 실려나갈 때는 센터백도 보고 풀백도 보지만, 대체로 결과는 참담하다. 에시엔이 센터백으로 나온 06-07 시즌의 리버풀전은 2:0 완패였고, 이 경기는 머리뼈 부상으로 힘든 재활과정을 거친 골키퍼 [[페트르 체흐]]의 복귀전(...)이었다. 램파드-에시엔-마케렐레의 황금 미들진에 [[미하엘 발락]]이 가세하자 첼시 미드필드는 과포화 상태가 되었다. 처음에는 꾸역꾸역 이 넷을 다 쓰는 다이아몬드 시스템을 돌렸지만 그러자니 윙포워드들의 자리가 줄어들어[* [[조 콜(축구선수)|조 콜]]은 일찌감치 시즌 아웃되었지만 첼시에는 여전히 [[아르연 로번]], [[숀 라이트필립스]], [[살로몬 칼루]] 등의 윙어 자원들이 남아있었다.] 다시 4-3-3으로 회귀한다. 게다가 06-07 시즌부터 수비진의 줄부상이 이어지다보니 넷 중 가장 멀티능력이 뛰어난 에시엔이 수비쪽으로 땜빵을 서는 일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다. 06-07 시즌에는 발락이 램파드의 조력자 역할을 잘 하지 못 했고 부상으로 인해 조기 시즌 아웃을 당해 다시 미드필더로 굳혀졌지만 07-08시즌에는 발락이 부상 복귀한 후 램파드-발락의 조화가 호흡을 맞춰가며 상당한 위력을 보이자 에시엔은 그대로 07-08 시즌 당시 포백에서 가장 불안정한 오른쪽 풀백으로 굳어진 것이다.[* 기존의 주전이었던 [[파울루 페레이라]]는 06-07 시즌부터 잦은 부상에 시달렸고 그 자리를 메꾸러 온 [[줄리아노 벨레티]]는 시즌 초반에만 괜찮은 활약을 보이다 금방 활약이 사그러들었다.] 첼시가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만났을 당시 오른쪽 풀백이 에시엔이었다. 그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호날두]]는 왼쪽 돌파만 죽어라 했고 전반전에는 에시엔이 거기에 무진장 털렸다. 물론 호날두를 막을 풀백이 전세계에 얼마나 있겠냐만, 상대가 호날두가 아니더라도 에시엔은 전문 수비수가 아닌 만큼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첼시는 후반전에 [[조 콜(축구선수)|조 콜]]과 [[미하엘 발락]]의 수비가담을 늘리면서 호날두를 어느정도 틀어막는 데 성공했고, 에시엔을 중원 싸움에 가담하게 하여 그 덕에 동점골이 나긴 했다.[* 아무튼 FM에서는 이를 반영해 현존 선수들 중 가장 많은 영역에 "능숙함" 이상이 뜬다.] 다만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에시엔의 수비력이 좋기는 하지만 전문 수비수급은 아니라는 것이다. 에시엔은 기본적으로 우월한 피지컬과 흑인 특유의 쫄깃함을 매우 잘 살려 중원을 초토화시키고 넓은 활동량으로 공수 양면을 모두 지원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비록 뚫리기는 했어도-- 제 몫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08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클로드 마켈렐레]]가 [[파리 생제르맹 FC]]로 떠난 후에는 발락, 램파드와 함께 중원을 형성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시즌 전반기에는 장기 부상으로 인해 출전이 거의 없다시피하여[* 그 공백은 [[존 오비 미켈]]로 메꾸려 했지만 미켈의 기량은 에시엔과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후반기부터 제대로 뛰기 시작한다. 2008-09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이 조합은 이 시즌 트레블팀인 [[FC 바르셀로나|바르셀로나]]를 경기 내내 압도했으며 에시엔은 이 경기에서 선제골까지 넣었다. [[톰 헤닝 외브레뵈|그러나...]] 09-10 시즌부터는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과 함께 했는데, 안첼로티 감독은 중앙 미드필더 4명을 두는 다이아몬드 4-4-2 전술을 채용하였다. 이에 따라 [[데쿠]], [[프랭크 램파드]], [[미하엘 발락]]과 중원을 형성,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12월에 부상을 당하면서 그 이후 시즌을 통으로 날렸다. 원래 4주 진단을 받았으나 부상이 덜 회복된 상태에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가나 대표팀에 나갔다가 거기서 무릎 부상을 입는 바람에 잔여 시즌 아웃과 함께 월드컵 출전도 무산되었다. 10-11시즌엔 발락마저 첼시를 떠났고, 그동안 장점이었던 패스, 활동량, 수비력, 중거리 슈팅 중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며 그야말로 '머릿수 채우러 나온 선수'정도의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같이 망한 미켈은 아예 선발로 나오지도 않았으며, 적응기가 많이 필요해 보였던 [[하미레스]], 한 시즌 공격스텟 최소 20을 찍어주는 램파드도 기어코 시즌 10골 이상은 넣었지만 기량 자체는 하락한 모습을 보인 것을 보면, 사실 당시의 첼시 미드필더 중 제일 준수했던 게 에시엔이었다. 그러나 11-12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십자인대]] 부상으로 또 한번 6개월을 끊은 뒤 돌아온 에시엔은 옛날의 그 에시엔이 아니라는 듯이 맥없는 플레이, 죽은 스피드, 떨어진 활동량 등을 보여주었다. 각종 축구 커뮤니티에서의 슬픈 별명은 '''고인''' 에시엔.[* 유명한 축구 게임인 FM 2012에서는 그래서 에시엔이 십자인대 부상을 이기고 돌아오면 그야말로 처참하게 능력치가 깎여나가 있다. 에시엔이 돌아오기 전에 팬들은 이런 FM의 시스템을 비판했지만 막상 에시엔이 돌아오자 그런 말은 사라졌다.] 본래 피지컬로 거의 먹고 사는 스타일의 선수였기에 이 부상은 정말 뼈아팠다. 그래도 노련미로 커버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으나 첼시에서는 에시엔이 공백 기간을 겪는 동안 [[하미레스]], [[하울 메이렐레스]], [[오리올 로메우]] 등의 삼각 조합이 좋은 성적을 보인 탓에 에시엔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후반기를 맡던 [[로베르토 디 마테오]] 체제에서는 하미레스가 라이트 윙으로 빠지고 로메우는 에시엔에게 밀렸지만 전술을 4-2-3-1로 바꾸고 메이렐레스의 파트너로 [[프랭크 램파드]], [[존 오비 미켈]]이 선택되어[* 메이렐레스가 시즌 초중반에 워낙 많이 뛰다 보니 시즌이 진행될 수록 지칠 때도 있었기에 교체로 시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도 램파드와 미켈이 우선이었고 에시엔은 후보였다.] 후반기에도 에시엔은 주전 자리를 놓쳤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에시앙 챔스 우승.png|width=100%]]}}} || 그래도 팀은 결국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